제작가 엄태흥씨의 소개

공지사항2008/01/28 19:14

전통을 이어가는 장인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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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에 악기를 제작하시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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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0년 넘은 남대문 목재를 이용하여 1960년에 제작한 악기, 엄태흥씨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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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 엄상옥씨의 기타 No.67 은 대단히 좋은 품질의 뛰어난 연주용 기타이다. 이 악기는 맑고 쾌적한 육성과 비슷한 음을 가진 악기이다. 이 악기는 연주하기 쉬운 훌륭한 장인의 뛰어난 수제품이다. "

1965.3.5 서울에서 S.베렌트

엄할아버지가 수제기타를 처음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세 때인 1932년에 우연히 '안드레스세고비아'의 연주를 감명 깊게 듣고 난 다음부터라고 한다. 이것은 우리 나라 최초로 클래식 기타를 제작하게 된 계기가 된다.손수 악기를 제작해 보겠다고 결심, 그 생각을 곧 실행에 옮겨 이웃에게 빌어온 기타를 요모조모 살피고 연구하기도 했다고 한다.그러나 가르쳐 줄 스승도, 참고할만한 서적도 없는 상태에서 음에 대한 감각만으로 기타를 제작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으나불가능을 가능케 했던 것은 파고드는 집념과 노력의 결과였다.
중략...
"좋은 악기란 주인이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서 결정이 되는데, 음악을 아는 사람은 악기를 사람처럼 귀하게 여긴다. 그래서 소리만으로도 좋은 악기를 구분해 낼만큼 악기를 정성으로 대한다"
이 말씀은 엄할아버지께서 생전에 자주 하시던 말씀이셨습니다.

- '오늘의 한국' 1991년 2월호의 ["세고비아"에게서 받은 감동, 손끝으로 빛는 장인의 삶] 기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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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서울시 성동구 황학동에서 태어난 엄태흥씨는 한국 기타제작의 선구자인 고 엄상옥님의 차남으로 한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 제대한 1965년부터 아버지의 뒤를 이어 기타제작의 길로 들어섰다 한다. 제작뿐 아니라 연주,교육,한국 클래식기타아 음악인협회 부회장(1971)등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한국 기타사를 정리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분인데..."

- 2003 7월 클래식기타 여름호 중에서 -

"본래 그는 클래식 기타 연주가의 길을 가려던 참이었다. 수차례 방송에도 출연할 정도로 연주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지만 그의 꿈을 펼치기엔 집안 형편이 받쳐주지 못했다. 그래서 연주가로서의 꿈을 접고 악기 제작자의 길을 택하게 되었다."

 - 2001 9월 한국담배인삼공사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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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창씨는 고 엄상옥 옹의 막내 아들이자 엄태흥씨의 동생이며, 현재 "엄태창기타"를 상표로 기타를 제작하고 있으며, 외국 유명 제작가들 및, 연주가들과의 교류를 통하여 연주회를 개최하고, 중국, 일본, 유럽으로 수제품을 수출하는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 기타 협회및 연주가 활동

1959년 "한국기타아 연주인협회" 창립 멤버

엄태흥씨의 선생님이셨던, 고 하희형 선생님께서는 1960년대 당시, 서울시청 공보과에 근무를 하시고 계셨는데, 당시 국내 클래식 기타 연주의 대가이셨던, 김인걸씨와 정세원(이북으로 피북)의 연주회에 청중으로써 참여하셨다가, 기타의 아름다운 선율에 반하여 클래식 기타의 연주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하희형 선생님은 스즈끼 바이얼린 7(당시 국내에 몇 대 없었던 고가의 일본제 수입악기로써, 최고급은 9호였습니다.)를 소장하고 연주를 즐겨 하실 정도로 바이얼린에 심취하셨던 분이시지만, 이 연주회를 계기로 바이올린을 중단하시고 클래식 기타에 심취를 하게 되었고, 이후 제자 엄태흥씨의 소개로 알게 된 고 김인걸 선생님과 함께 현 한국기타협회의 모체가 된 한국기타아연주인협회를 1959년에 창립을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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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후반, 한국기타아연주인 협회 모임에서 스승님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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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트 방한시, 1960년대 한국 기타인 협회의 회원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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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회 전국 기타아 콩쿨 협회에서 심사위원 활동및 연주가 후원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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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결성된 기타협회의 원려합주단으로 2006, 2007년 송년연주회 연주>


외국 연주가들과의 활발한 교류 활동과 호평

독일의 베를린 음대 교수 라우리 렌돌프와 다른 연주가들과도 많은 만남이 있었는데, 엄태흥씨는 그들을 만날 때마다, 자신의 악기를 보여주었고 그들의 조언을 받아 악기의 개량에 힘을 써 왔으며, 호평을 받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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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베를린 음대 교후 라우리 렌돌프 방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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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음대 교수 라우리 렌돌프 방한시 기타협회 회원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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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리 렌들프가 연주자들과 함께 방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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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리 렌돌프 교수의 초청으로 베를린 음대 방문시>


활발한 제자 양성 활동

엄태흥씨는 다른 제작가와는 달리, 기타 교육에도 열정을 쏟았는데, 덕성여대 고전기타반을 창설하였으며, 이후 10년넘게 지도활동을 하였으며, 특히 최근에는 지역의 문화센터에서 자원활동으로 기타연주 지도활동을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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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덕성여대 고전기타반 운향 창립 기념 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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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회후 운향 회원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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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음대교수 라우리 렌돌프 초청 워크샵, 덕성여대 운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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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서울 송파구 복지회관 회원들과 함께>

외국 유명 제작가들과의 활발한 교류 활동

1980년 후반, 해외 여행 자율화를 계기로 일본, 독일, 미국의 제작가들을 자례로 방문하여 공동으로 악기를 제조하는등, 많은 교류와 연구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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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오 사토
영국의 호세 루비오로부터 기타 제작을 사사하였으며, 벨기에를 거쳐 독일에 정착한 한국계 일본인 제작가.

1980년 후반부터 독일에서 기타 제작가 가즈오 사토와의 교류를 시작하면서, 서적으로만 접했던 독일 악기의 제작과정을 실제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3개월간 사토씨의 초청으로, 독일에 있는 그의 집에 머물면서 악기를 공동으로 제작하였는데, 엄태흥씨의 실력으로도 콘서트 악기의 제작이 가능함을 확인였고, 국내로 돌아와 콘서트 악기의 제작에 힘을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당시, 엄태흥씨의 콘서트 악기는 국내 최초, 최고의품질을 보였으며, 엄태흥씨의 콘서트 악기는 다른 국내 제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어, 한국 기타 제작의 수준을 한층 높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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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체류중, 사토씨의 가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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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쯔무라

고노기타에서 제작을 사사한 후, 프랑스의 부쉐로부터 제작을 사사함. 현재 오사카에서 악기 제작을 하고 있는 일본의 중견 제작가.

마쯔무라씨와는 상호 초빙하여 악기 제작 워크샵을 통하여 서로의 지식을 교환하는등 많은 교류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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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흥씨는 사토씨와 마쯔무라씨와 매우 친한 관계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서로 방문하여 악기에 대한 의견을 서로 교환을 하였으며, 그외에도 미국, 스페인등의 기타 제작공방에 방문하여, 제작과정을 견학하는등 새로운 기술의 도입과 활발한 연구활동을 하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