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4일 부산의 한 카페에서 열렸던, 클래식 기타계의 원로 배영식 선생님을 기념하는 자리에 아버지를 모시고 참석을 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많은 배영식 선생님과 관련된 많은 포스터와 자료들이 전시되었고, 기타계의 원로이신 김금헌 선생님과 아버지이신 엄태흥씨와 함께 여러 한국 기타계의 원로 분들을 모시고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이 비디오에 함께 공개가 된 사진들은 한국 기타 역사상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사진들입니다만, 용량이 너무 큰 관계로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필요하신 분들은 연락을 주시면 DVD 원본으로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자료사진과 비디오가 많은 관계로 무척 글이 깁니다. 끝까지 보시는 것도 귀한 자료들이므로 한번씩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기념회에 전시된 자료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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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가 된 자료들을 보시는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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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배영식 선생님의 독주회 포스터 입니다.
스폰서 기타메이커로 다이아몬드, 제노아가 나왔네요. 제노아와 다이아몬드는 모두 할아버지이신 고 엄상옥씨의  기타 브랜드 입니다. 당시, 제노아 기타는 보급형 악기 브랜드였고, 다이아몬드는 고급형 기타 브랜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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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식 선생님의 연주회 포스터와 부산광역시에서 받으신 문화상에 대한 안내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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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배영식 선생님의 독주회의 신문기사 입니다.
당시, full time은 아니었고 바이얼린 독주회를 함께 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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銘記를 찾아서



음악인 으로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하나 예로 들으라 하면 마음에 드는 악기를 구한 기쁨이 으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1958년경 군의관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경복궁 옆에 있는 수도육군병원의 병실에 어떤 소녀가 기타아(guitar)를 들고 와서 연주하고 있었다.

그 당시로서는 매우 보기 힘들었던 고 엄상옥 선생의 수제작품이었다. 나는 틈이 나면, 그 기타아를 빌려서 연주해 보곤 차츰 아름답게 울리는 음색에 매료되어갔다.

그 병원터에는 고궁의 건물도 남아있었고, 또 300석쯤 되는 계단식 좌석이 둘러진 강당이 있었는데, 의학강의, 교회, 음악당으로 쓰이고 있었다.

그곳에서 열린 한 음악회에서 그 소녀의 기타아를 빌려서 연주한 일이 있었는데, 뜻하지 않던 일이 일어났다.

그 곳에 있었던 음악가나 높은 수준의 음악애호가(音樂愛護家)들이 연주가 끝난 다음에 몰려와서, "이렇게 아름다운 guitar음악을 들은 일은 처음이라고 흥분하고 있었다. 물론 그전에도 한두 번 연주를 한적이 있었지만, 음량이 작아서 전회장에 충분히 들리지 않았었다.악기에 따라서 음악의 효과가 얼마나 다른가 하는것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내가 애용하던 악기는 큰 홀에서는 수제악기 앞에서 빛을 잃었었다

그 소녀의 집은 신당동(당시 유락정)에 있었고, 길건너에 있던 왕십리의 엄상옥 선생의 공방을 그 소녀의 안내로 찾아 갔었다.한옥의 문을 들어서니, 넓직한 마루로 쌓인 작은 방은, 사랑방과 연주실을 겸하고 있었으며, 음악하는 손님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그 당시, 서울에는 엄상옥, 이완근, 신경철, 세분들이 있었고, 지방에서는 대구, 광주에 소량의 생산은 있었으나, 엄상옥 선생의 수제 guitar명성은 특히 높아서, 뭍사람들의 선망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주 문해서 달포를 기다릴 후에 나의 명기 제 1호는, 이러한 인연으로 구했고, 연대적으로 나의 네번째 소장 악기였다. 당시에는 송판이 앞판으로 쓰였고, 옆과 뒷판은 단풍이 많이 쓰였는데, 스프르스(spruce)나 로즈, 하카란다등 악기제목의 수입이 없었던 그때가 오히려 순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순국산제료에 의한 제품으로서 추억이 새롭다. 악기제작에 쓰이는 목재는 최소한 20 내지 30년동안 건조시킨 것이 쓰인다.

오래된 나무일수록 건조가 잘되어 소리가 좋고, 뒤틀림이나 변형이 적다. 그때에도 고가구, 고옥(헌집)에서 나온 목재가 나오면, 좋은 악기가 나올 것을 기대하면서 흥분을 하곤 했었다.

우리나라 기타아 제작의 역사중에서 큰 획을 이루는 사건이 있었다. .국보 제 1 호인 남대문을 해체 보수할때 500년 묵은 송판을 얻은 엄상옥 선생은 이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중의 한대는 미국 washington에  D.C.의 Sophpcles Papas 교수에게 증정되었는데, 그 악기를 처음 대면한 Papas교수의 놀라움과 기뿐순간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오 백년 묵은 나무를 그는 곧장 알아보고 그 역사성에 더욱 감동하고 있었다. 이 악기는 처음에는 Andres Segovia에게 헌정될 예정이었으나, 필자의 귀국일자인 1964년 2월까지는 세고비아가 워싱턴에 올 계획이 없었으므로 파파스 교수에게 행운이 돌아간 것이었다.그에 대한 감사의 보답으로 당시에는 매우 희귀한 현과 자료등을 엄상옥 선생에게 가져다 드렸다.

한 국제 guitart의 해외소개 제1호였으며, 파파스는 제자들에게 레슨을 할 때에 자주 이 악기를 사용했으며, 그를 방문한 많은 음악가나 제작가들에게 자랑했었다. 한국을 방문한 서독의 베렌트(siegbried Berrend)도 Lute(류트)와 같은 고색의 울림을 칭찬했었다.

1984년에 필자가 미국을 방문했을때에 양로원 생활을 하고 있던 파파스선생에게 전화를 했을 때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었다. 89세의 노 스승은 난청으로 전화통화가 무리였다. 나는 옆 사람을 바꾸어 달라고 해서 한국의 고송으로 만든 악기를 기억하는가 묻게 했다.노교수는 금시에 생기에 넘치는 반가운 목소리로 "어데서 전화를 거는거야?" 하고 기쁨에 찬 음성이 전화선을 타고 울려 왔었다.


전 기타협회 회장

                                                                                     의학박사         강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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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악기는 많은 분들이 궁굼해 하시는 악기중의 하나인, 1960년대에 고 엄상옥 옹께서 남대문 개보수 공사때 나온 목재로 제작을 하신 일명 "남대문 기타" 입니다.

이때 기타를 제작하고 남은 재료는 기타 1대를 만들수 있는 분량의 재료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세계에 한국의 클래식 기타를 알리게 된, “숭례문 기타”
 
베란트는 독일 베를린 음대 교수이며, 외국 유명 연주가로써는 최초로 한국에 방문을 하였으며,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여러 번 한국에 방문을 하여 연주회 및 기타연주인 협회와의 교류를 하였던 연주가입니다.
1960년 초반에 독일의 문화를 알리기 위하여 베란트가 세계순회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독일정부의 지원으로 방한하여 연주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베 란트가 방한하였을 때, 독일 문화원에서는 당시 한국 최고의 기타 제작가인 고 엄상옥 옹과 그의 악기인 “숭례문 기타”를 베란트에게 소개 했고, 베란트는 " 명장 엄상옥씨의 기타 No.67 은 대단히 좋은 품질의 뛰어난 연주용 기타이다. 이 악기는 맑고 쾌적한 육성과 비슷한 음을 가진 악기이다. 이 악기는 연주하기 쉬운 훌륭한 장인의 뛰어난 수제품이다. " 라고 극찬하였습니다.

이때, 고 엄상옥 옹은 세계에 한국의 악기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베란트에게 증정하기 위하여 “숭례문 재료”를 이용한 악기 증정하였고, 또 한대의 악기는 강우식 박사를 통하여 그의 스승이자 연주가였던 세고비아에게 증정할 예정이었으나, 일정이 맞지 않아 세고비아의 친구인 파파스 교수에게 증정을 하여 동양의 소리를 알리게 되었습니다.
이 증정된 악기들은, 상표에 태극문양을 추가하여 한국의 악기임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이 "숭례문 기타"에 대한 전 기타협회 회장 강우식 박사님의 소개글
http://cafe.naver.com/uhmguitar/13

“숭례문 기타(남대문 기타)”의 소개

1960년도 숭례문 보수공사에서 나온 금강송 목재는 550년 이상 건조가 된 재료이며, 엄태흥 선생님께서 처음으로 스푸르스를 수입을 했던 1980년대 후반까지는 가장 뛰어난 재료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당 시의 상황을 설명하자면, 6.25 전쟁 이후 미국에서 수입이 된 건축 자재중에서 좋은 재료를 골라 악기를 제작하였고, 1970년대에는 이전보다는 많은 목재가 수입이 되어 좋은 재료도 많았지만, 건축용 목재였기 때문에 악기용으로는 훌륭한 재료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해외여행 자유화가 된 해, 엄태흥 선생님께서 직접 일본과 독일에 방문하여 악기용 목재인 독일산 스푸르스를 수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좋 은 악기용 재료가 없던 이 시절에는 고가구나, 오래된 건축물에서 나온 목재는 악기를 만들기위한 가장 좋은 재료였는데, 1960년 숭례문 보수공사에서 나오는 목재가 있는 것을 알게 된 고 엄상옥 옹께서는 공사장에 방문하여 숭례문을 건축에 사용된 550년 이상된 금강송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이 금강송을 이용하여 제작된 악기는 다른 악기와는 달리, 전판이 2쪽이 아닌 6쪽으로 제작되었으며, 측후판은 단풍나무로 되어있는 100년 이상 된 고가구를 이용하였고, 헤드의 디자인은 악기의 무게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가볍게 제작이 되었습니다.
또한, 모자이크나 기타 장식을 제작하는 업체가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모든 것을 직접 제작을한것이 특징이며, 1985년도 중반까지 생산된 국산 악기들 중에서 최고의 악기로 인정받고 각종 연주회에 사용이 이용이 되었습니다.

1990 년대 이전에 제작된 악기들은 건조가 덜된 건축자재를 이용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현재의 악기들에 비하여 수명이 짧고 내구성이 떨어지지만, 이 악기는 좋은 재료를 이용하여 정성 들여 제작을 하였기 때문에, 아직도 연주가 가능한 상태로 보존이 되어 있습니다.


소장중인 “숭례문 기타”에 대한 소개

현 재 엄태흥 선생님께서 소장중인 이 악기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가장 뛰어난 품질과 음색을 지닌 것으로 평가 받고 있는 “숭례문 기타”이며, 고 엄상옥 옹께서 이 악기를 기념으로 보관을 하였고, 현재는 아드님이신 엄태흥 선생님께서 소장중이며, 연주가 가능한 국산 악기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악기입니다.

또한 이 악기는 국내에서 국산, 수입산을 통틀어 가장 많이 국내 무대에 올랐던 악기인데, 많은 기타 연주가들이 이 악기를 대여하여 연주를 하였으며, 제작 이후, 1980년대 초반까지 오세춘씨를 비롯한 금병준씨, 강우식씨등 많은 연주가들이 대여하여 사용하였으며, 제1회 전국 기타 콩쿨에서 오세춘씨가 연주에 사용한 것을 비롯하여, 1970년대 후반까지 현 대학기타 연합회의 전신인 대학기타 협회의 모든 연주회에 사용, 엄태흥 선생님께서 KBS일요음악회 연주에 사용을 하는 등 많은 연주회와 콩쿨에서 사용이 된, 수많은 경력을 가진 악기로 유명합니다.

음색의 특징을 설명하자면, 최근의 악기들에 비해서도 저음은 자연스러우면서도 깊은 아름다운 음색이며, 고음부는 최근 콘서트 악기들에 비하여는 약합니다.
또한 일본 제작가인 마쯔무라씨는 최근에 이 악기의 음색에 감명을 받았다고 극찬하였는데, 특히저음부의 음색은 어느 악기도 따라올 수 없는 풍부하고 아름다운 음색을 가지고 있다고 극찬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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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5 21:21 2008/02/15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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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흥씨의 선생님이셨던, 고 하희형 선생님께서는 1960년대 당시, 서울시청 공보과에 근무를 하시고 계셨는데, 당시 국내 클래식 기타 연주의 대가이셨던, 김인걸씨와 정세원씨(이북으로 피북)의 연주회에 청중으로써 참여하셨다가, 기타의 아름다운 선율에 반하여 클래식 기타의 연주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하희형 선생님은 스즈끼 바이얼린 7호(당시 국내에 몇 대 없었던 고가의 일본제 수입악기로써, 최고급은 9호였습니다.)를 소장하고 연주를 즐겨 하실 정도로 바이얼린에 심취하셨던 분이시지만, 이 연주회를 계기로 바이올린을 중단하시고 클래식 기타에 심취를 하게 되었고, 이후 제자 엄태흥씨의 소개로 알게 된 고 김인걸 선생님과 함께 현 한국기타협회의 모체가 된 한국기타아연주인협회를 1959년에 창립을 하셨습니다.

한국기타아연주인협회의 초대 회장이시며 최고 원로이셨던 고 김인걸 선생님은, 이북에 계시던 정세원씨의 친구로써, 두 분이 함께 클래식기타를 연주하시다가, 연극을 공부하기 위하여 동경으로 유학을 가셨다 귀국하신 후, 퇴계로에 배우전문학원(현재 코오롱 본사 뒷편)에 설립하셔서 운영을 하시고 계셨습니다.

이 배우 전문학원은

당시, 엄태흥씨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던, 배우전문학교의 원생이었던 조순화씨가 클래식 기타 연주를 하시던, 엄태흥씨에게 자신이 배우공부를 하고 있는 학원 원장선생님께서 클래식 기타연주를 잘 하신다고 소개를 했고, 엄태흥씨는 고 김인걸 선생님과 친분이 쌓인 후, 스승이셨던 고 하희형 선생님을 소개하셨습니다.

(초대 회장이신 고 김인걸 선생님은 엄태흥씨의 결혼식의 주례를 맡아서 해주실 정도로 엄태흥씨와도 깊은 친분관계를 쌓게 됩니다.)

이렇게 클래식 기타 연주가들은 1950년대 초반부터 김인걸 선생님과 하희형 선생님을 중심으로 모임을 자주 갖고 연주회도 하며 지내던 중, 1959년에 김인걸 선생님께서 운영을 하시던 배우전문학교에서 한국기타연주인협회를 창설하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한국기타협회의 59년도및 69년도 창립식은 두번 모두 고 김인걸 선생님께서 운영을 하시던 이 배우전문학원에서 거행되었습니다.)

1960년대는 한국 기타계에 큰 사건이 두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세계적인 희대의 천재 연주가 세고비아의 음악이 한국에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그리고 연주가 베란트의 방한이었습니다. 이렇게 클래식기타는 대중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다시금 클래식 기타계에 새로운 힘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1969년 또하나의 사건이 있었는데, 원로이신 고인걸 선생님의 지도하에, 당시 신진세력이었던 현 클래식기타의 원로이신 강우식 선생님을 중심으로 엄태흥씨, 김종만씨, 김금헌씨등과 여러 연주가분들과 함께 1969년에 한국 클래식기타아음악인협회로 명칭을 바꾸어 재출범하였습니다.

첫 공식적인 행사로써는 1970년 6월 17일 수요일 7시 30분 한국인 클래식 기타아 연주인 협회 창립 1주년 기념 연주회를 국립극장에서 개최하였으며, 이때 연주는 당시 톱 연주가였던 김금헌씨의 현악4중주 D장조 No.1을 시작으로 알함브라의 회상등 주옥 같은 명곡들을 여러 연주가들에 의하여 연주가 되었는데, 이때 1부 출연 연주가로써 엄태흥씨는 김종만씨, 조무광씨와 함께 삼중주곡 C장조 Op.26 를 협연하셨습니다.

이렇게, 현재의 한국기타협회는 모습을 갖추어 가기 시작했고, 많은 연주가들과 애호가들이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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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31 12:52 2008/01/31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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