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 2009년 6월
전판: 독일 스푸르스
측/후판: 인디언 로즈우드
네크: 혼두라스 마호가니
지판: 아프리카 에보니
현장: 650mm
제작: 2009년 7월
전판: 독일 스푸르스
측/후판: 인디언 로즈우드
네크: 혼두라스 마호가니
지판: 아프리카 에보니
현장: 650mm
하시구치씨의 독주회 현황을 DVD와 Audio CD 로 드리고 있습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hongsik.uhm@guitar.co.kr 로 메일을 주시기를 부탁 드리겠습니다.
연주들으러 가기
녹음은 2008년 07월 31일에 엄태흥씨의 작업실에서 녹음한 하시구치씨의 연주입니다.
곡명은 Lagrima(눈물) 이고 하시구치씨는 재녹음 없이 한번만에 연주를 해 주셨습니다.
사진은 거실에서 촬영을 한 것이고, 지리산곰 회장님께 연주를 해드릴때 한컷 찍었습니다.
Wave를 AAC타입으로 바꾸었더니 음질이 많이 떨어지는 군요...
WAVE는 원래의 소리를 그대로 전해 드리고 싶은데, "클럽박스 자료실"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클럽박스 자료실은 http://clubbox.co.kr/uhmguitar 입니다. 아마 오늘 저녁까지는 다 올릴수 있겠지요.
이 번 프랑크푸르트에 악기 전시회에 참가를 했다가, 독일 제작가이며, 아버지의 친구이신 가즈오 사토씨를 만났는데, 갑자기 자신의 집에 묵으면서 함께 여행도 하다 돌아가라며 예정에는 없던 초청을 하셔서 사토 아저씨의 댁에서 몇일 머물다 왔습니다.
사 토 아저씨가 초청을 하면서 하신 말씀은 이번이 아버지의 두번째 독일 방문이고, 다음에는 언제 자기 집에 올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르니 꼭 함께 가서 몇일간 지내자고 말씀을 여러번 하셔서 결국 사토 아저씨의 집에서 머물게 되었습니다.
호텔 예약을 미리 해 놓고, 전시회 기간이라고 호텔에서 취소를 해주지 않는 바람에, 800유로(3박)의 호텔을 그냥 비워두고 가서속은 많이 쓰리기는 했는데, 아버지가 사토아저씨의 집에 머물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까웠던 생각이 모두사라지더군요.
요즘, 사토아저씨의 악기가 무척이나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구입을 하면 약 2년을 기다려야 한다는데, 제가 소개하면 바로 주겠다고 약속을 하시더군요 ^^
혹시 필요하신 분 계시면 제게 말씀하세요, 언제든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악기가 판매가 잘 되고, 아들딸들도 다 독립해서인지, 매우 편안해 보이고요. 전에는 많이 말랐는데, 이제는 제법 살도 찌시고, 머리도 허옇게 변해셔서 무척 놀랐습니다.
살림이 많이 핀 때문인지, 취미생활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계십니다.
카메라는 니콘의 최고급인 전문가용 D3를 쓰고, 렌즈들도 고가의 렌즈뿐이라 입이 쩌억쩌억~벌어질 정도입니다.
가즈오 사토아저씨의 아들인 다께오 입니다.
기타리스트로 독일에서 연주활동을 하고 있고요, 일본에서도 자주 연주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한번 방문을 하여 연주회를 하였는데, 그때 저희집에 몇일 머물고 있었죠.
그런데, 저는 일본에서 생활을 할때라서, 저와의 만남은 처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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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옆으로 이야기가 샜지만, 역시 악기 발표회의 하일라이트는 연주인데, 사촌동생인 엄지수 양이, 그의 교수였던 Anger Krause와 함께 합주를 하였습니다.
사촌 동생이라서 아직 어리기만 한줄 알았는데, 이미 독일의 음악 대학원에 진학하여 공부중이고요 연주도 많이 늘어서 기쁘더군요.
제 개인적으로는 앞으로도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연주를 많이 하기를 바라지만, 좀 튼튼해졌으면 하면 바램은 있습니다. ^^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악기전시회에 갔다가, 삼익악기 연회장에서 두분은 서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번 만남은 10년만의 재회였고, 독일에서의 만남은 20년만이었죠.
이때, 아저씨는 자신은 이제 2년만 더 살면 인생은 끝이라고 농담하면서, 다시는 함께 할 시간이 없을 것 같다는 농담을 하시면서, 모든일을 제치고 자기 집으로 오라는 극구 초대를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예약된 호텔이 취소가 되지 않아, 800유로라는 큰 돈이 아까워서 망설였지만,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는 말씀에 그만 저도 흔쾌하게 아저씨의 집으로 따라 나서게 되었습니다.
아저씨와 아버지는 같은 기타 제작가의 인생의 길을 함께 걸어오신 분이십니다.
아저씨는 일본에서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의 사이에서 태어났고, 우리나라의 해방으로인해 아버지와 생이별을 하고 일본에 남아 생활을 하였고, 철이 들자마자 일본을 떠나 영국에서 기타 제작을 배우시고 독일에서 결혼후 정착을 하셨습니다. 딸 둘과 아들 둘이라는 대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매우 고생하시면서 살아오셨고, 이제는 삶에 여유를 찾아 취미생활을 즐기시면서 악기제작을 계속 하고 계십니다.
아버지는 한국에서 태어나, 6.25를 거쳐 거친 역사의 가운데에서,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기타 제작이라는 외길을 걸어오셨고, 외국의 악기를 제작하면서도 한국외로 한번도 나가본적 없이, 그 당시에는 누구나 그랬듯이, 건축자제로 수입된 재료를 고르고 골라 악기를 만드시면서 한국에서의 악기제작의 한계에 고민하시다가, 80년대말 여행자유화와 함께 외국으로 뛰쳐나가서 인생의 전환점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95년 이후에야 국내에 악기전용 재료들이 수입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르면서 힘든 환경이었지만, 두분은 좋은 악기제작이라는 하나의 길을 서로 떨어져서 묵묵히 걸어오신 분들입니다.
그리고,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악기라는 하나의 공통된 관심사가 있었기에 서로의 마음이 통했고, 그리고 20년이라는 대화없는 묵묵한 만남을 통하여 친구로써 함께 지내오신 분들입니다.
두 분이 만나셔서, 저를 통해서 서로 말씀을 나누셨는데, 아저씨는 이렇게 시간을 가지고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그동안 자기가 아버지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을 다 이해하고 있고, 또 아버지가 말씀하시고 싶던 것들도 아저씨가 이미 이해를 하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하시면서 밝게 웃으셨습니다.
저도 통역을 놀란것은 아저씨와 다른 사람들간의 오해는 있었어도, 아버지와의 오해는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두분의 만남에서는 무뚝뚝하지만 따스한 정을 느낄수가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헤어지는 기차역에서도 서로 말 없이 손만 흔드시다가 아버지가 한국에서 만나자고 동쪽 하늘을 가르키셨습니다. 그러자 아저씨도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시더군요. 다음번에는 한국에서 보자고.
집에 돌아와서 이 사진을 다시 보게 되니, 같은 인생을 다른곳에서 걸어오신 두분의 말없는 뒷모습에서 저는 왠지 뭉클한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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