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음악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음악사 음악문헌 시창 청음등을
강의하다가 지금은 늦게 목회를 하고 있는 목사입니다
대학에서 전공은 성악을 했고 대학원에서 이론을 공부해서 목원대학교 침례신학대학교에서 약15년동안 가르쳤습니다 침례신학대학 교회음악과에서 가르칠 때 기타 전공학생들이 있어서 그들의 도움을 받아 기타 앙상불을 지도 한적도 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 기타연주(아마추어)를 듣게 되었고 어깨너머로 배워서 반주를 할 수 있었을 때는 기타 음색에 매료되어 자주 만졌습니다. 배영식 기타교본을 사들고 몇곡을 연주해 보았고 알함브라궁의 추억을 한번 연주해 보는것이 기타에 대한 소박한 꿈이 었습니다. 지금도 이 꿈이 남아 있기는 합니다만...,
며칠전 장마비가 쏟아 지는날 누가 기타를 쓰레기 버리는곳에 버려서
열어보니 엄태흥 이라는 글씨가 보여 눈이 번쩍 띄어 비에젖은 케이스를 들고 집에 모셔 놓았습니다. 관리가 잘 안되어서 인지 앞면 부분이 줄의 압력 때문이었는지 약간 배가 불른 상태입니다 내가 한번
수리해서 써 볼까, 아님 제작자인 엄태흥 씨를 찾아 가볼까 고민하고 있는 중입니다. 혹시 엄 선생님이 기타를 한번 보고 싶으시다면
곧장 광주로 올라갈 볼까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도 음악을 전공하고 기타에 대한 애착도 있어서 부친이신 엄 상옥님의 존함도 익히 알고 있습니다.
기타가 수리되어 좋은 음색의 기타를 하나 가질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저의 나이 이제 61세가 되었는데 지금도 기타로 반주하며 노래하는
기회가 많네요. 몇년전 까지만 해도 연습용 기타를 가지고 duet 이나 solo 연주를 하기도 했구요...,
지난 10월 24일 부산의 한 카페에서 열렸던, 클래식 기타계의 원로 배영식 선생님을 기념하는 자리에 아버지를 모시고 참석을 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많은 배영식 선생님과 관련된 많은 포스터와 자료들이 전시되었고, 기타계의 원로이신 김금헌 선생님과 아버지이신 엄태흥씨와 함께 여러 한국 기타계의 원로 분들을 모시고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이 비디오에 함께 공개가 된 사진들은 한국 기타 역사상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사진들입니다만, 용량이 너무 큰 관계로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필요하신 분들은 연락을 주시면 DVD 원본으로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자료사진과 비디오가 많은 관계로 무척 글이 깁니다. 끝까지 보시는 것도 귀한 자료들이므로 한번씩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기념회에 전시된 자료들 사진]
전시가 된 자료들을 보시는 분들.
제1회 배영식 선생님의 독주회 포스터 입니다. 스폰서 기타메이커로 다이아몬드, 제노아가 나왔네요. 제노아와 다이아몬드는 모두 할아버지이신 고 엄상옥씨의 기타 브랜드 입니다. 당시, 제노아 기타는 보급형 악기 브랜드였고, 다이아몬드는 고급형 기타 브랜드였습니다.
배영식 선생님의 연주회 포스터와 부산광역시에서 받으신 문화상에 대한 안내문입니다.
제1회 배영식 선생님의 독주회의 신문기사 입니다. 당시, full time은 아니었고 바이얼린 독주회를 함께 하였다고 합니다.
이 나무는 브라질의 리오 주변에서만 자라는 나무이며, 예로부터 아름다운 무늬와 단단함으로 최고급 가구를 만드는데 이용이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급격한 산업화에 의하여 많은 개체수가 벌목되었고, 현재는 보호 수종으로 지정되어 거래 자체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는 목재입니다.
목재의 특징은 기름기가 있어, 열을 가하면 송진과 유사한 성분(검은 기름기)가 밖으로 흘러나오며, 다른 나무들과는 다른 특이한 향이 나옵니다. 이 향기는 매우 진하고 특이합니다.
하카란다는 무늬를 우선 보고 판단하고, 그 다음에는 향기를 맡아 보고 판단하여야 합니다.
유사 하카란다로는 아마존 로즈우드, 인도네시아 블랙우드 등이 있으나, 그 향기는 하카란다처럼 향기롭지 못하고 나무 고유의 향기가 납니다.
약 50여전만 해도, 브라질의 리오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던 나무였기 때문에, 건물의 목재로 많이 사용이 되어 왔기 때문에, 벌목은 금지되어 있지만, 기존 건축물에서 나온 재료를 이용하는 것은 제한된 몇명의 라이센스를 취득한 사람에 의하여만 판매및 수출이 허가가 되어 있습니다.
이 허가를 얻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절차를 거쳐야만 합니다.
1) 하카란다로 지어진 건물을 구입 후, 브라질의 CITES 담당 공무원의 입회하에 건물을 해체한다.
2) 해체된 각 목재에는 고유 일련번호가 부여되어 허가증을 발급 받은 후, 제제소로 운반한다.
3) 브라질 CITES공무원의 입회하에, 목재들이 필요한 크기로 재단이 되고, 재단이 된 나무들은 각각의 일련번호를 부여 받고 증명서를 발급 받는다.
4) 3번에서 발급받은 증명서를 가지고, 브라질 CITES로부터 상대방 받을 사람의 주소와 이름을 등록후 다시 증명서를 발급받는다. (이 과정에서 제가 등록되었습니다.)
5) 발급받은 증명서를 가지고, 상대방 국가(미국,일본,한국)의 CITES 관리국으로 부터 허가를 받는다.
6) 세관을 통과한다.
최근 CITES의 기준이 매우 엄격해져서, 허가받지 않은 재료로 제작을 한 악기들은 미국/일본등의 엄격하게 CITES조약을 준수하는 국가들에 입국/수출시 세관에 압수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모습은 건물의 재료로 사용이 된 하카란다 입니다.
이처럼, 브라질의 오래된 낡은 건물들은 주변에서 싸고도 쉽게 구할수 있는 하카란다를 잘라서 건물의 대들보나 지붕에 사용을 하였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마루 바닥까지 하카란다로 이루어진 집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집을 구입하여 해체하면 아래와 같이 하카란다로 된 목재가 나옵니다.
이 목재들은 비교적 어두운 색을 띄고 있습니다.
하카란다는 나무로 잘리어진 후에는 갈색의 색을 띄고 있으나, 잘린 후 수분이 많은 환경에서 보관하면 나무속에 포함되어 있는 타닌 성분이 산화되어 검은색이나 진한 붉은색으로 변화를 하게 됩니다.
따라서, 검은색 하카란다는 매우 귀한 재료이지만, 음색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단, 전체적으로 검은 빛을 띄는 하카란다는 결이 곧고, 결이 곧은 나무는 울림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에, 좋은 재료로 취급이 됩니다. 따라서 색상이 검은빛을 띄지 않아도 결만 곧으면 그 재료가 최상품이 됩니다.
이렇게 오래된 집에서 가져온 하카란다는 겉이 다듬어 지고, 기타의 재료로 사용이 될 수 있는 형태로 가공이 됩니다.
이때, 저가 재료들은 절약을 위하여 Back과 Side가 따로 따로의 나무에서 각각 잘리어 지고, 나중에 짝을 맞추게 됩니다. 하지만, 로드리고씨는 악기를 직접 제작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재료의 가격이 상승 되더라도 보다 아름다운 악기를 만들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나무에 기타의 그림을 그려, 사용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합니다.
우선 back을 만들 수 있는 크기인지 확인합니다.
그리고 바로 뒤에 side의 길이가 나올 수 있는지 그림을 그립니다.
이런식으로 Back 두장을 먼저 잘라 내고, 다음에는 Side 2장을 같은 위치에서 잘라냅니다.
이 방법은 하카란다의 낭비는 많지만, 완벽하게 매칭이 되는 하카란다를 얻어낼 수 있는 최상의 방법입니다.
지난 토요일 오후에, 저희집에 반가운 두분의 손님이 오셨습니다. 한분은 여러번 저희집에 오셨던, 야마오카씨가 한국 출장차 오신길에 저희집에 들리셨고요, 또 한분은 놀랍게도 제가 어릴때 영월엄씨형이라고 불렀던 그 엄형님께서 오셨습니다. 저 희 집하고 같은 영월 엄씨이신데, 제가 어릴때 자주 오셨던 것으로 기억나고 아버지께 기타를 배워 가시기도 하셨는데, 졸업후 한동안 소식이 가끔 궁굼하기도 했었는데, 오늘 갑자기 환하게 웃으시면서 저희 집으로 들어오시니 무척 반가웠습니다. 그때였나요? 엄씨가 귀하다는 이야기를 하니까, 영월에 가면 한반에 절반이상이 엄씨라고 말씀하시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엄 형님이 연주를 시작 하시자, 처음에는 좀 느릿하시더니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예전의 실력이 다시 살아났고, 연주하던 모습을 보던 야마오카씨가 연주의 자세와 기본이 튼튼하고 터치가 매우 좋아서, 기타의 소리가 더 이쁘게 살아난다고 칭찬을 하셨고, 아버지께서는 가장 기억에 남도록 열심히 한 학생이라고 칭찬을 하셨었습니다. 야마오카씨는 왜 프로 연주가가 되지 않았냐고 물어볼 정도로 좋은 실력이었는데, 야마오카씨도 자신도 프로 연주가가 되려고 하다가 한계에 부딪혀 결국 사업가가 되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인지 무척이나 진지하게 물어 보셨었습니다. 그 렇게 이야기를 하다가, 함께 점심식사를 하시고는 다시 이야기를 하다가 함께오신 형수님께서 음대를 나오신 것을 알고는 아버지의 권유로 기타 연주와 함께 노래를 불러 주셨고요, 그 것을 보다가 야마오카씨도 함께 중주를 하셔서 모두 즐겁게 듣고 노래하는 즐거운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작업실에는 총 4대의 기타가 있었는데, 두대의 로즈우드 콘서트 중에서 한대는 주문하신 분이 그날 저녁에 가져가기로 하신 것이었고, 나머지 세대는 올해 이바라기 기타 페스티벌에 출품할 예정으로 제작이 된 악기였는데, 야마오카씨가 올해 이바라기 전시회는 없고 내년에 열릴 것이라고 하시면서 엄형님께 악기를 권유하셔서 구매를 결정하셨고 (아마 로즈우드 콘서트 두대 모두 주인이 없는 것으로 오해를 하셨던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 남은 악기를 야마오카씨가 연습용으로 구입을 하시겠다고 하셨지만, 이미 예약이 되어 있는 악기라고 말씀드리자 실망하시면서 반드시 7월에 다시 와서 가져갈테니 그때까지는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하셨습니다. 작년에도 악기를 한대 구입을 해 가시고는 또 주문을 하셔서, 이미 16대의 기타가 있는데 왜 또 주문을 하느냐고 물어 보자, 새로나온 로즈우드 콘서트 악기가 자기의 마음에 너무 들었고, 집에서 연습용으로 좋은 악기를 구입하고 싶었는데 마침 그 악기를 찾은것 같다는 대답이었습니다. 특히, 일본에서는 이정도의 악기라면 60만엔을 줘야 하는데, 지금의 가격이라고 한다면 절반 이하의 가격이니까, 용돈을 아껴서라도 사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욕 심같아서는 하카란다 콘서트 악기도 사고 싶지만, 그것마저 사시면 집에서 쫏겨날거라면서, 한달 용돈이 30만엔이니까 로즈우드 콘서트정도는 용돈을 아껴서 사시겠다고 하신 말씀이 참 부럽기만 했습니다. 한달 용돈이 420만원이라면 보통 사람들 월급보다도 많은 돈인데, 역시 사장님은 다르긴 다른가 봅니다. 그러면서도 가난하다고 말씀을 하시니 참.... 어쨌든, 갑자기 10년넘게 뵙지 못한 엄형님과, 저희 아버지의 악기를 무척 아끼고 사랑해 주시는 야마오카씨 두분께서 한날 함께 오셔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어 무척 기쁜 주말이었습니다.
1970년대에 TV에 방영이 되었던 "어느인생"이라는 방송에 방영되었던 비디오 입니다. 처음 녹화를 해 놓았을 때에는 베타 방식의 비디오였는데, VHS로 옮기는 과정에서 화질이 많이 떨어졌네요. 그래도, 70년대에 기타 제작을 하던 과정들이 많이 소개 되어 있습니다. 비디오는 22분짜리라서 3개의 파일로 분할해서 업로드 합니다.
2008 이바라기 기타 페스티벌의 한일 연주회의 실황연주입니다. 악기는 엄태흥씨의 하카란다 콘서트 스페셜 모델이며, 연주는 후쿠오카의
하시구치씨가 해 주셨습니다. 연주 곡명은 바흐의 첼로 독주곡No6 in D Major 1-Prelude(BWV1012) 을 기타곡으로
편집하였습니다. 이 곡을 첼로로만 듣다가 기타로 들으시게 되면 처음에는 어색하게 들리시겠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첼로의 원곡과 같은 느낌을
받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스트링은 카본스트링을 사용하여 연주하였습니다. 나일론에 비해서 조금 날카로운 소리가 날지도
모르겠습니다.
녹음은 2008년 07월 31일에 엄태흥씨의 작업실에서 녹음한 하시구치씨의 연주입니다. 곡명은 Lagrima(눈물) 이고 하시구치씨는 재녹음 없이 한번만에 연주를 해 주셨습니다. 사진은 거실에서 촬영을 한 것이고, 지리산곰 회장님께 연주를 해드릴때 한컷 찍었습니다.
Wave를 AAC타입으로 바꾸었더니 음질이 많이 떨어지는 군요... WAVE는 원래의 소리를 그대로 전해 드리고 싶은데, "클럽박스 자료실"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클럽박스 자료실은 http://clubbox.co.kr/uhmguitar 입니다. 아마 오늘 저녁까지는 다 올릴수 있겠지요.
In Search of My Sound, Classical Guitar Maker Uhm Tae-heung
2008-08-04
Here's a small village on the outskirts of Gwangju in Gyeonggi province. The day is cloudy. The KBS crew is here to meet the so called master maker of classical guitars. We expected some kind of a studio but we find an ordinary two story Western style home with a small, neatly arranged garden. This is his son Uhm Hong-sik.
From the days when we ran a factory, we always lived next to our workplace as we do now. So from early childhood, I watched my father work more so than other family members.
The son leads us to the second floor studio. We listen to hear if there’s any noise coming from the workroom, but again our expectations are dashed. Instead, we hear a melodious guitar sound from downstairs. A white headed man, with eyes closed, is immersed in the sound of the guitar he’s playing and the rain falling outside. He is the 66 year old master classical guitar maker Uhm Tae-heung. Discovering guests, he puts down the guitar and massages his arm. Maybe guitar playing at his age is a little strenuous. Here is Mr. Uhm.
Maybe I’m working the wrong way. I don’t know. But no one else has this problem but me.(hahaha) My father worked much harder when he was my age but he’s fine and healthy.
Uhm received a shoulder ligament surgery just a few days ago. He worries that his physical changes came early compared with his father who worked many more years before passing. Uhm has been making guitars for 43 years. He flings open the door to his workroom and the smell of fragrant wood overwhelms us.
Honduras Mahogany is the best for guitar timber. Our ancestors tried out different kinds of mahogany and the Honduras type proved the safest and has since become popular.
A: The precious timber is dried for ten to 20 years. In the drying room, Uhm smells the timbers one by one, a fragrance he’s been used to since childhood. But he remembers that when he was a boy, his father’s workroom was pretty shabby.
There wasn’t much of an established guitar timber at the time. Father probably used just any kind of adequate wood in making guitars… He made a guitar for himself each year and then another if someone requested. I saw him making a guitar even before the Korean War broke out in 1950. After we took refuge and returned home after the war, he made living out of it.
Uhm’s father is none other than the first Korean guitar maker, Uhm Sang-ok, who introduced guitar making skills to Koreans who knew how to play, but not how to make, the instrument.
Father was a skillful man from early on. In the countryside in the old days, there were picture frames often seen at barbershops. He made those himself. He painted pictures of islands, the sea and sailors in a ship… He also knit underwear and socks. And then after the war, he began making guitars to sell them to U.S. soldiers stationed in Korea in the post war era.
Mr. Uhm Sang-ok doggedly made guitars and that alone from 1932 to ‘97 when he passed away. His masterpiece is undoubtedly the Sungnyemun guitars. He made three guitars from wood he obtained during the 1960 remodeling of the Sungnyemun city gate. Two famous guitarists took two of the three and son Tae-heung hangs onto the other one.
It still sounds but can’t deliver a performance or anything. It is so old, it’s broken. The low key is still alive but it can’t make higher pitches.
His father used to say there’s ‘Nothing’s left in life without guitars.’ So his son was somewhat destined to a life with guitars. But Tae-heung in his young days was more into guitar music than the hammer sounds that go along with guitar making.
I just played easy children songs in monotone and not necessarily full scale music. Just before I started military service in 1963, I performed in a program called the KBS Sunday Concert. And I later heard the performance in the barracks. I don’t call myself a guitarist, but an aficionado.
He is too modest. He was indeed a talented guitarist who made several TV appearances. But after finishing military duty and having grown older, he preferred the sound of shaving wood. He chose his father’s work studio over guitar playing.
Korea did not possess the expertise to make guitars until the 1960s. His father really was the only person in the country who knew the trade. He always stressed sincere and honest craftsmanship.
He knows nothing else but guitar making. He doesn’t know and doesn’t care about how the world goes around and is just focused on his work, dead-on. He’s least interested in household finances, if the family has enough coal or rice. He just works and works. But in work, he’s meticulous. He even hated for people to bother him by passing by, especially his wife who wore long, fluttering skirts that got in his way. Korean women customarily wear the traditional attire hanbok in the days just after marriage.
The guitars he and his father made were not of the best material, but with the boom of acoustic guitars, demand rose and the son opened a separate studio. His ear for music as a former guitarist also proved helpful.
You need to know the sound because as you make the guitars, you think of how you will create the sound. For instance, in making rice cakes, a balanced shape, not crooked or tilted, is pretty. The same here. We also pull, push, press and take out sounds to balance them out.
Literally in those days, he made guitars all day long except during meal time. For 20 years, he thought of nothing else. He wondered why he didn’t think of learning foreign production skills earlier while they were importing precious guitar materials. Now that he had made some money, he wanted to make better quality guitars. So, he went overseas to hone his skills.
I went to Germany when the Berlin Wall fell. Before then, I visited Japan and I think I visited the US later. I saw that in the advanced countries, guitars were made not in factories but in studios. And I discovered from my own experiment that cheap factory guitars were different from ones I personally made at home.
Japan was particularly more advanced in guitar making than Korea. But once committed to learning the ropes from square one, nothing could stop him. Uhm barely spoke Japanese but he just paid a visit to the Japanese master guitar maker Kazuo Sato.
He didn’t show me everything at once but he was prepared to educate me. First he showed me a notebook and told me to follow as instructed. Finishing a certain task, I asked for his opinion. If he said I was good to go, I moved on to the next step. Sometimes he said I needed to shave the wood more. I learned from him in this way.
But little did he know that the advanced skills he learned from abroad would be an obstacle. Korean critics were not happy with Uhm’s work, calling it a copycat of Kazuo Sato’s and other foreign guitars. In tears, Uhm realized he must pull himself together.
I thought this will not do. I realized that first, I need to make a guitar of my own representing Korea. But what I was making had no nationality or unique sound.
Uhm only then understood what Kazuo Sato had said “The skills of a guitar maker canot be robbed, learned or taught.” He gave up building a guitar factory and focused on research and practice, the start of a long lone battle toward creating the one and only Uhm TaeHeung guitar.
My guitars should last a long time, even after I’m gone from this world. For instance when making a plank, I would check three to four times to see if it’s shaved perfectly or if there’s anything I can redo. Until I have faith that there’s possibly nothing more to be improved, I go on to the next stage work.
He worked with such perfection for ten years to create an exquisite guitar. There were several guitars which he thought he made pretty well but had horrible sound. So embarrassed, he couldn’t make another guitar for the rest of the year. The grueling hard work also resulted in shoulder pains. Here, he talks about the kind of guitar he was trying to achieve.
A good guitar has strength in the sound and, at the same time, is easy to play. When the sound is powerful, it’s usually not easy to play that guitar. A good guitar satisfies both qualities. For instance, a thick pine board will be difficult to pound on but a board too thin will have a weak sound. So the task is to make a guitar in which the strong sound of a thick pine board will easily resonate even with a thinner board.
Uhm heads to the workroom at 4 am every morning. He produces one guitar each month, for 12 in a year, no more, no less. He charges 3 to 5 million won a piece. Any guitar expert would call his guitars top notch. But modest Uhm thinks the praise is nonsense.
I wouldn’t say my guitars are on par or better than those by the prominent Claudine Bouché of France. Mine simply share similar qualities of those famed guitar brands like Josef Hauser. I’m not yet on the same level with the master craftsmen. But I will say master guitar makers aren’t just ordinary people. They are like wizards. Not just anyone can become a great craftsman.
When choosing good timber for guitar material, you pound the wood like this and pick the one with a good sound. See, the sound is different. This has a higher pitch. Higher the better. Pound on the front side as well.
As if to show how difficult it is to find that ‘great sound’, he starts pounding on all sorts of different timbers. He then stops and stares at an old guitar as if looking into a mirror.
Guitars also age and grow old. At first when just made, they struggle to balance themselves and be tuned. Once balanced, they cry out to their utmost strength. As years pass, the energy seeps away and after some 70 to 80 years, the sound becomes really soft and gentle but lacks vitality and life.
Uhm says “The guitar sounds different according to who made the guitar and also according to the performer. So how I can say I am the best in the trade?” He sits down with an old guitar and starts playing. The melody seems to break off and then continue, again and again. He won’t likely put down the guitar before the rain stops.
최근, 프랑크푸르트 악기 전시회를 방문하고 돌아와서, 바로 이바라기 기타 페스티벌을 준비하느라 요즘 제가 정신이 없습니다.
이번 이바라기 기타 페스티벌에, 주최 책임자인 마쯔무라씨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한일교류 프로그램도 신설하여 지금 준비중입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무척 막막하였는데, 주위의 많은 분들과 기티협회분들의 도움으로 지금은 7명의 제작가가 참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한일 교류 프로그램은, 기타 제작가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14일 오후 2시간반동안, 그리고 15일 2시간에 걸쳐서 한일 공동 콘서트와 파티를 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연주자 분들에게는 참여를 하시면 도움이 되실수 있도록 일본측에 일본 기타계의 관계자분들을 모시기로 했고, 일본측 연주자들은 일본에서 프로로 활동하는 실력있는 연주자분들을 초청하여, 참석하신 분들이 일본 인맥을 넓히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많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연주3분이라는 제한을 없애고 6분 이상으로 연주시간을 늘려, 연주가분들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 하실수 있도록 하였고, 전시회 흥보물및 팜플렛에 제작가와 동일한 분량의 약력, 소개등을 하실수 있도록 준비를 하였습니다.
또한, 이 전시회의 준비를 위하여 잡지사인 "Classic Guitar" 분들의 도움을 받아, 흥보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참조를 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아직 연주가 분들의 신청이 저조한 형편입니다. 앞으로는 연주가 분들의 참여에 대하여 흥보를 할 예정입니다.
만일, 6월에 일본방문이 가능하신 분이 계시다면, 저희와 함께 준비를 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관심이 있으신분은 제게 언제든지 연락을 주시기를 부탁드리며, 제 연락처는 010-5639-8009 입니다.
이 번 프랑크푸르트에 악기 전시회에 참가를 했다가, 독일 제작가이며, 아버지의 친구이신 가즈오 사토씨를 만났는데, 갑자기 자신의 집에 묵으면서 함께 여행도 하다 돌아가라며 예정에는 없던 초청을 하셔서 사토 아저씨의 댁에서 몇일 머물다 왔습니다.
사 토 아저씨가 초청을 하면서 하신 말씀은 이번이 아버지의 두번째 독일 방문이고, 다음에는 언제 자기 집에 올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르니 꼭 함께 가서 몇일간 지내자고 말씀을 여러번 하셔서 결국 사토 아저씨의 집에서 머물게 되었습니다. 호텔 예약을 미리 해 놓고, 전시회 기간이라고 호텔에서 취소를 해주지 않는 바람에, 800유로(3박)의 호텔을 그냥 비워두고 가서속은 많이 쓰리기는 했는데, 아버지가 사토아저씨의 집에 머물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까웠던 생각이 모두사라지더군요.
<미찌꼬와 그의 딸, 그리고 스파게티를 만들고 있는 사토 아저씨>머물던 동안 딸인 미찌꼬가 자기의 남편과 딸을 데리고 왔더군요. 이전에 아버지가 머무셨을 때에는 아직 미찌꼬가 지금의 미찌꼬의 딸만했었는데, 20년이 지나 저와 함께 와서 미찌꼬의 딸과 아들을 보니, 세월이 지났음에 대하여 많은 감회를 느낀다고 아버지와 사토아저씨가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버지 사진을 찍은후에, 편집중인 사토 아저씨>
요즘, 사토아저씨의 악기가 무척이나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구입을 하면 약 2년을 기다려야 한다는데, 제가 소개하면 바로 주겠다고 약속을 하시더군요 ^^ 혹시 필요하신 분 계시면 제게 말씀하세요, 언제든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악기가 판매가 잘 되고, 아들딸들도 다 독립해서인지, 매우 편안해 보이고요. 전에는 많이 말랐는데, 이제는 제법 살도 찌시고, 머리도 허옇게 변해셔서 무척 놀랐습니다. 살림이 많이 핀 때문인지, 취미생활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계십니다. 카메라는 니콘의 최고급인 전문가용 D3를 쓰고, 렌즈들도 고가의 렌즈뿐이라 입이 쩌억쩌억~벌어질 정도입니다.
그리고 또하나의 취미로는 시계수집을 하고 있습니다. 동네 시계방을 지나면서 한번 들려주고 구경을 하시더군요.
자동차는 BMW를 주문해 놨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 마을의 BMW전시장에 들려 함께 구경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BMW미니에 꽃히셔서 그것만 들여다 보시고 ㅎㅎ
말없이 거닐기만 했던 마을의 공원에서 두분의 뒷모습입니다. 두분은 말 없이 거닐기만 하셨지만, 그래도 무언가 연결된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왜인지 모르겠더군요. 저는 말을 할줄 알지만, 말이 끊기면 무언가 불안하여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저 두분은 말이 없는데도 잘 지내십니다. 저 두분의 관계에서, 제가 배워야 할 것이 많은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떠나올때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보면,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시는 구세대의 분이시죠. 그런데, 말 없이 몇개월동안 사토아저씨와 함께 작업도 하시고, 일본에 가서도 마쯔무라 아저씨와도 함께 작업하시고, 그외 다른 사람들과도 함께 많은 것들을 함께 하셨죠. 지금은 사토 아저씨와 마쯔무라 아저씨와 제가 이야기를 할 때 느끼는 것은, 그분들이 아버지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말은 안통하지만, 지금까지 진실되게 대해왔고, 그리고 무뚝뚝해도 그래도 마음이 좋은 분이라는 것을 이해해 주고 그리고 친구로 지낸다는 것이 참 대단합니다. 요즘은 아무리 말이 통하여도 친구가 되기 어려운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세대들보다 아버지 세대의 분들의 우정과 신뢰의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던 분들의 모습을 본다면 존경스럽기만 합니다. 저도 저런 친구가 있으면 좋겠네요..부럽습니다.
삼익악기 주최로, 이번에 작은아버지께서 만드신 삼익기타의 발표회및 연회가 있었습니다. 이날 저희 테이블에는 여러 사람이 참가를 했는데 작은아버지와, 아버지, 가즈오 사토와 그의 아들 다께오, 레인버트 에버스 교수, 피아니스트인 와겐하우저와 그의 남편등이 함께 자리를 했습니다.
기타 제작가인 가즈오 사토씨입니다. 오랜만에 뵈었더니, 그사이에 흰 머리도 많이 늘고 살도 많이 찌셨더군요. 그래도 언제나 유쾌하지만 날카로운 사람입니다. 제가 고등학교때 저희 집에 머물러서, 제가 장기를 가르쳐 드렸는데, 처음 장기를 두면서 세판만에 이겨 버리더군요. 그 뒤로 내내 제가 졌습니다 ㅠ.ㅠ
가즈오 사토아저씨의 아들인 다께오 입니다. 기타리스트로 독일에서 연주활동을 하고 있고요, 일본에서도 자주 연주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한번 방문을 하여 연주회를 하였는데, 그때 저희집에 몇일 머물고 있었죠. 그런데, 저는 일본에서 생활을 할때라서, 저와의 만남은 처음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서 즐거우신지 내내 웃고만 계시더군요 ^^
매우 쾌활한 부부입니다. 부인은 특히 미인인데, 전세계를 돌면서 연주를 한다고 하더군요. 가운데 여자 이름이 Mrs. Raluca Wagenhauser입니다. 발음이 어려워서 한글로는 모적겠군요.. 사진을 몇장 찍었는데, 자기는 최근의 사진이 없으니까 꼬옥 보내달라고 신신당부를 하더군요. 그리고 외국학생들을 많이 가르쳐서 그런지 언어문제보다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나중에 홈페이지에서 보니, 실력도 대단한 미인입니다. 11살에 이미 피아니스트로 유명했고요, 미모도 뛰어나 젊은 시절에 고생좀 했을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와 이야기 해본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최고의 미모를 가진 여인입니다 ㅠ.ㅠ
잠시 옆으로 이야기가 샜지만, 역시 악기 발표회의 하일라이트는 연주인데, 사촌동생인 엄지수 양이, 그의 교수였던 Anger Krause와 함께 합주를 하였습니다.
사촌 동생이라서 아직 어리기만 한줄 알았는데, 이미 독일의 음악 대학원에 진학하여 공부중이고요 연주도 많이 늘어서 기쁘더군요. 제 개인적으로는 앞으로도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연주를 많이 하기를 바라지만, 좀 튼튼해졌으면 하면 바램은 있습니다. ^^
아버지와 친구이신 독일의 기타 제작가 가즈오 사토 아저씨가 함께 아저씨의 동네 공원에서 산책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악기전시회에 갔다가, 삼익악기 연회장에서 두분은 서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번 만남은 10년만의 재회였고, 독일에서의 만남은 20년만이었죠.
이때, 아저씨는 자신은 이제 2년만 더 살면 인생은 끝이라고 농담하면서, 다시는 함께 할 시간이 없을 것 같다는 농담을 하시면서, 모든일을 제치고 자기 집으로 오라는 극구 초대를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예약된 호텔이 취소가 되지 않아, 800유로라는 큰 돈이 아까워서 망설였지만,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는 말씀에 그만 저도 흔쾌하게 아저씨의 집으로 따라 나서게 되었습니다.
아저씨와 아버지는 같은 기타 제작가의 인생의 길을 함께 걸어오신 분이십니다. 아저씨는 일본에서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의 사이에서 태어났고, 우리나라의 해방으로인해 아버지와 생이별을 하고 일본에 남아 생활을 하였고, 철이 들자마자 일본을 떠나 영국에서 기타 제작을 배우시고 독일에서 결혼후 정착을 하셨습니다. 딸 둘과 아들 둘이라는 대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매우 고생하시면서 살아오셨고, 이제는 삶에 여유를 찾아 취미생활을 즐기시면서 악기제작을 계속 하고 계십니다.
아버지는 한국에서 태어나, 6.25를 거쳐 거친 역사의 가운데에서,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기타 제작이라는 외길을 걸어오셨고, 외국의 악기를 제작하면서도 한국외로 한번도 나가본적 없이, 그 당시에는 누구나 그랬듯이, 건축자제로 수입된 재료를 고르고 골라 악기를 만드시면서 한국에서의 악기제작의 한계에 고민하시다가, 80년대말 여행자유화와 함께 외국으로 뛰쳐나가서 인생의 전환점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95년 이후에야 국내에 악기전용 재료들이 수입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르면서 힘든 환경이었지만, 두분은 좋은 악기제작이라는 하나의 길을 서로 떨어져서 묵묵히 걸어오신 분들입니다.
그리고,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악기라는 하나의 공통된 관심사가 있었기에 서로의 마음이 통했고, 그리고 20년이라는 대화없는 묵묵한 만남을 통하여 친구로써 함께 지내오신 분들입니다. 두 분이 만나셔서, 저를 통해서 서로 말씀을 나누셨는데, 아저씨는 이렇게 시간을 가지고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그동안 자기가 아버지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을 다 이해하고 있고, 또 아버지가 말씀하시고 싶던 것들도 아저씨가 이미 이해를 하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하시면서 밝게 웃으셨습니다.
저도 통역을 놀란것은 아저씨와 다른 사람들간의 오해는 있었어도, 아버지와의 오해는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두분의 만남에서는 무뚝뚝하지만 따스한 정을 느낄수가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헤어지는 기차역에서도 서로 말 없이 손만 흔드시다가 아버지가 한국에서 만나자고 동쪽 하늘을 가르키셨습니다. 그러자 아저씨도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시더군요. 다음번에는 한국에서 보자고.
집에 돌아와서 이 사진을 다시 보게 되니, 같은 인생을 다른곳에서 걸어오신 두분의 말없는 뒷모습에서 저는 왠지 뭉클한 느낌이 듭니다.
안녕하세요 엄홍식입니다. 이번에 독일 프랑크푸르트 악기 전시회를 다녀왔는데, 바로 일본 이바라기시에서 일본의 기타 제작가인 마쯔무라씨가 악기 전시회가 있다고 알려오셔서 급하게 공지를 드립니다. 지난주와 이번주에 마쯔무라씨의 부탁으로, 이바라기시에서 개최하는 전시회에 참가를 희망하시는 한국분들은 저를 통해서 신청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상세한 내용은 아래의 글들과 별도의 안내글들을 읽어보시고 참가를 희망하시는 분들은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한일 연주가들의 교류를 위한 모임을 별도로 준비하고 있으나, 아직 계획은 명확하게 세워진 것은 없습니다. 따라서, 희망하시는 분들께서는 제게 알려주시고, 어떠한 일들을 하면 좋겠다는 희망을 알려주시면, 제가 마쯔무라씨를 통하여 기타 페스티벌 준비위원회와 함께 논의하여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참가 비용등은 기본적으로 개인참가이므로 자비를 기본으로 합니다. 인원이 많은 경우에는 교통편의 준비도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아직 계획이 없습니다. 인원이 많은 경우에는 제가 인솔하여 일본으로 출발을 하도록 하겠으나, 저도 개인적인 스케쥴이 아직 잡혀있지 않은 상태이므로 스케쥴이 정해지는 대로 별도로 공지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아래의 스케쥴로는 한국에서 참가하시는 분들께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리허설 일정 등), 이 부분도 제가 조율을 하도록 하겠으므로, 필요하신 문의사항이 있으시면 제게 메일을 주시기 바랍니다. 메일을 주실때에는 제목에 반드시 "이바라기 기타 페스티벌"이라고 적어주시기 바랍니다.
이 름: 엄홍식 이메일: guitar@guitar.co.kr 핸드폰: 010-5639-8009
지금까지 이번 이바라기시의 기타 페스티벌의 준비를 진행해 오는 과정에서, 국내외의기타 제작가 49분께서 참가의사를 밝혀 오셨으며, 앞으로도여러분의 많은 협력을 부탁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참가를 희망하시는 분들께 다시 한번 번거로운 부탁이 되겠지만, 보다 상세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하여 새로운 “참가희망서”를 4월4일까지 보내주시기를부탁 드리게 되어 다시 한번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함께 보내드리는 “춢품요강”에는 출품신청 방법을 포함하여 연락방법과 송금방법에 대하여안내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내용을 읽어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준비위원회의 검토결과 지금까지 공지하였던 내용으로부터 아래의 몇가지 내용이 변경이 되므로, 아래의 내용을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전에는 1대의 기타만을 전시가 가능하였던 것을 1인당 2대의 기타로 변경을 하였습니다.
단, 전시기간중에 정해진 악기만이 전시가 가능합니다. 여러대의 악기를 전시하기 위하여 전시중에 악기를 교환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1대의 악기를 전시하는 경우에는 5,000엔의참가료를 받습니다만, 2대의 경우에는 10,000엔의 참가료를받기로 하였으며, “키라메기”홀에서 악기를 소개하는 것은 1대의 악기만이 가능합니다.
한국에서 참가하시기를 희망하시는 분들께.
한국의 분들께는 처음으로 안내를 드리는 것이 되므로, 배경 설명을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이바라기시 기타 페스티벌은 일본의 제작가인 마쯔무라씨가 기획하여, 시의지원을 받아 전시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전시회는 평일 오후와, 토/일 전일 전시회가 예정이 되어 있으며, 출품자는 기타연주가와 함께키라메키 홀에서 1곡의 연주와 간단한 자신의 소개를 하도록 되어 있으며, 가능하면 연주자와 함께 참석을 하여 주시기를 바라며, 만일 연주자가없는 경우에는 마쯔무라씨를 통하여 연주자를 소개 받을 수가 있습니다.
또한 전시된 기타를 일반인이 연주를 해 볼 수 있도록 계획되어 있으므로, 전시되는기타는 개인이 직접 소개를 하고, 전시 기간중에 직접 관리를 해 주셔야 합니다.
전시장소는 연주 및 특별 전시를 위한 1개의 홀과, 2개의 전시룸이 별도로 예정이 되어 있지만, 참가자의 수에 따라서최대 4개까지의 전시실을 준비할 예정입니다.
참가희망 수속에 대하여
이번 이바라기시 준비위원회 회장이신 기타 제작가 마쯔무라씨와 통화를 한 결과,참가를 희망하시는 한국분들은 한국에 있는 “엄홍식”씨를통하여 신청서를 받고 진행을 하기로 결정 하였습니다.
회장 근처에는 식당이 없으므로, 식사를희망하시는 분들께도 식당의 안내를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출품악기에 대한 안내]
* 출품기타는 일반공개시에 실행위원회가 지정한 장소에 위치하여야 하며, 출품자가 직접 관리하며 악기에 대한소개를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소개 홀의 기타는 일반 책상의 높이의 전시용으로준비가 된 장소에 전시하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악기 전시위치에 악기 소개를 하기 위하여 다음의내용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한국에서는 영문으로 작성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악기의명칭
-각부의재료(전면,측면,뒷판, 네크,브릿지의 재료)의명칭과 현장
-출품자의사진
* 전시규정상 전시된 악기는 일반 방문자들이 연주를 해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 악기를연주해 보기를 희망하는 관람객이 의자에 앉은 상태에서, 제작가가 기타를 전달하고 연주후에는 다시 제작가가기타를 받는 방식으로 진행하므로, 이때 악기에 발생하는 기스,파손등에대해서는 본 행사장에서는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제작가 스스로 관리를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 악기의줄은 출품자가 준비를 합니다.
* 악기를출품하실 때, 악기 스텐드도 함께 준비를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전시회장에서는지정된 장소 이외에서는 음료 및 음식을 드실수가 없는 점에 대하여 주의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문화이벤트에 대한 안내]
* 본준비위원회가 작성한 “출품자 소개 안내”이외의 안내는 전시를하실 수 없습니다.
* 본준비위원회가 작성하지 않은 책자, 안내문등의 배포도 금지됩니다.
* 본전시장에서는 방문자의 질문에는 답을 하여 주시기를 바라나, 판매를 위한 상담은 금지가 되어 있습니다.
* 개인의안내문, 명함등은 전시회장의 전시대에서 악기와 함께 놓고 배포하는 것도 금지됩니다.
[악기의 반입/반출에 대한 안내]
전시회측에서 기타의 보관 및 관리를 책임지지 않으므로, 본 전시장에서의 악기의 반입과 반출은 출품자 개인의 책임하에서 이루어 집니다.
단, 개인의책임하에서 사용할 수 있는 록커를 사용하기를 희망하시는 분은 미리 알려드리면, 예약을 하여 드리겠습니다.
[출품작품의 연주에 대하여]
* 모든출품자의 기타는 일정에 따라서 키라메키 홀에서 연주소개를 합니다.
출품 악기가 2대인 경우에도 1대만의 악기와 같은 시간인 6분의 연주 및 악기 소개 시간이 주어집니다.
주어진 6분 이내에 연주와악기의 소개가 이루어지며, 만일 희망하신다면 6분 이내에여러곡을 연주하거나, 악기를 교체하여 연주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제한시간을엄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키라메기홀에서 연주를 희망하시는 분은, 출품기타의 연주자에 대하여 별도의 신청서를 작성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신청방법
한국에서 신청하시는 분들께서는 MS워드 형식으로 아래의 내용을 작성하여 guitar@guitar.co.kr로 보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우레탄 도장의 경우, 무광택과 유광택의 서로 다른 종류의 도장이 있으며, 두 도장 모두 광택의 차이만 있을뿐, 경도나 습기에 대해서는 동일한 효과를 가집니다. 셀락은 유광도료만이 있으며, 셀락을 얇게 칠하면, 바이올린이나 첼로와 비슷한 정도의 광택이 나고, 고광택을 얻기 위하여, 밑도장을 완료한 후, 여러번 반복해서 도장을 해 칠을 두껍게 만듭니다. 하지만, 습기에 대한 내성은 여러번 덧칠을 한다고 해서 강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서너번만 도장을 하여도 충분하게 습기로부터 악기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원래, 기타는 바이얼린과 같이 서너번만의 도장을 해서, 소리를 안정화 시키는 역할을 하였고, 부수적으로 방습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오래된 명기들을 보시면 알 수 있으며, 지금도 일부 외국의 유명 제작가들의 악기들은 소리를 위하여 얇은 도장만을 하고 있습니다. 저가 악기와 포크기타에 셀락이 아닌 락커를 도장으로 사용하면서 두껍고 고광택의 악기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경향을 일본 제작가들이 셀락악기에도 상품성을 높이기 위하여 고광택을 위해 두꺼운 도장을 하기 시작하게 되었는데, 한국이 그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좋은 소리를 위해서는 바이얼린과 같이 셀락을 얇게 도장을 해 주는 것이 좋으며, 마지막으로, 우레탄 도장의 경우 유광과 무광의 악기적인 성능 차이는 없습니다.
이 글은 http://www.guitar.co.kr의 게시판의 글들 중에서 회원 분들이 많이 궁굼해 하실만한 내용을 옮겨온 것입니다. 추가 질문이 있으신 분들은 덧글을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
[질문]
>선생님 더운 날씨에 건강하신지요? >저는 올해 초 400호를 구입한 김종민입니다. > >다름이 아니라 요즘 한두시간 기타를 연주하고 나면 몸과 닿은 부분에 자국이 생깁니다. >마치 스카치 테이프를 붙였다 뗀 듯한 자국인데요. 비스듬히 비쳐보면 매우 잘 보입니다. 처음엔 뭐가 묻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부드러운 천으로 닦아 보았는데 소용이 없구요 아무래도 쉘락칠이 땀과 섞여 녹은 느낌입니다. >그런 것이 가능한지 알고 싶구요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려주십시오. > >그리고 저번에 전화로 말씀드린대로 저는 저음을 강하게 치는 것을 좋아하여 >버징을 피하기 위해 양쪽 브릿지에 책받침과 종이를 끼워 사용하고 있는데요 >저에게 맞는 새 브릿지를 편지 봉투에 넣어 보내주실 수 있는지요?
[답변]
기타의 셀락칠이 땀과열에 녹아서그렇게된것인데 더운여름에는 기타가 직접몸에닿지않게 기타에 융이나 세무를대고 연주하시면됩니다. 수리는 기타를 가지고 오시면 깨끗하게 수리를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브릿지의 경우에는 원하시는 높이및 곡면처리를 함께 해야 하기 때문에, 높이만 가지고는 보내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죄송합니다만, 다시 한번 칠을 수리하시면서 방문하여 주시면 조정을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은 http://www.guitar.co.kr의 게시판의 글들 중에서 회원 분들이 많이 궁굼해 하실만한 내용을 옮겨온 것입니다. 추가 질문이 있으신 분들은 덧글을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
[질문]
>올해 여름 남편과 아들 데리고가서 200호 구입한 주부입니다. >기억 하시겠지요? >워낙 소심한 성격에,기타 보는 눈은 없고 해서 여러번 방문도 했었구요. >10월중엔 가족 여행도 있고 여러가지로 기타를 몇 번 못쳤더랬습니다. > >지난주에 드디어 기타 모임에서 기타를 자랑할 기회가... >대부분들 소리 좋다고 해서 기분은 좋았는데, >일부의견이 합주시에 제 기타가 울림이 크고 튄다고 할까요? 그런 얘기를 들으니 조금 신경이 쓰이네요. >제가 느끼기에도 소리가 크게 잘 울려주어 좋긴한데, >상대방이 듣기에 그렇다고 하니 걱정이 되어서요. >주로 독주 보다는 합주를 많이 하는 저로서는 신경이 쓰여집니다. >궁금하면 못 참는 성격 급한 사람인지라 이렇게 글 올렸습니다. >갑작스런 추위에 건강 유의하십시요.
[엄태흥]
악기는 좋을수록 소리가 크고 원달성(멀리까지 소리가 가는 성질)이 뛰어납니다. 따라서 좋은 악기와 좋지 않은 악기가 함께 합주를 하게 되는 경우에는 좋은 악기의 소리가 월등히 뛰어나서 균형이 깨지는 듯한 느낌은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다른기타보다 성능이 월등히좋아서 이런현상이된것같으니 고민하지마시고 열심히 기타를 연습하시기바랍니다
지금 가지고 계신 악기는 연주용기타이고 다른분들이 사용하고 있는 악기는 연습용일것같아서 소리의 차이가있는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합주를하실경우에는 제1기타파트를 맡으시면 다른파트보다 한두사람이 적어도 될것같습니다. 같이연습하다보면 다른사람들이 가지고있는기타에 대해서 고민하게될것같으니 신경쓰지마시고 마음편히 연습하셔도 될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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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제가 맡은 파트가 3rd파트인데다,기타의 음량이 풍부하다보니 소리가 더 두드러졌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기타의 브릿지 부분이 조금 높은 것 같아 보이는데, 만약 낮추면 울림이 조금 덜해질 수도 있을까요? 선생님 말씀에 자신감을 얻고 열심히 치겠습니다만, 차후에라도 계속 신경이 쓰인다면, 다시 찾아뵙던가,연락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엄태흥]
기타는 피아노에서 중음이고 소리가 낮기때문에 다른악기에 비해서 소리가 작습니다. 기타를 연주하는사람들은 텃치의힘을 키우거나 소리가큰악기를 선호합니다. 기타의 하현주를 낮추면 텃치를 강하게할때는 버징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텃치가약한사람들이 줄의 높이를 낮게해서 사용합니다. 텃치가약해서 소리가 작은경우는 연주할때 무대효과가없습니다. 하현주를 낮추고싶으면 하현주를 빼서 아래부분을 사포에 갈아서 다시끼우면되는데 할수없으면 기타를 가지고오시면 낮춰드립니다. 궁금하신사항이 있으시면 전화를 주시면 자세히 설명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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